시간여행 | 시간의 풍경들 - 과거, 현재, 미래 (조관용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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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펜과 싸인 펜으로 선을 긋고, 색 연필로 칠하고, 지점토와 색료 등으로 애써 공들여 완성한 작품의 표면을 그는 사포로 문지르고 있다. 조금만 힘을 주어도 사포의 예리한 날에 하얀 줄이 가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기에 온 몸이 쑤시는 답답한 순간들을 보내야 한다. 그리고 캔버스 안에 작은 박스를 만들어 그 안에 다양한 오브제와 미니어처의 형상을 배치하고, 그 모양에 맞춰 캔버스의 틀도 꼼꼼하게 짜 놓는다. 


사각의 캔버스로 회화의 이미지를 구현해야 한다는 오랜 강박관념은 그의 의식 속에는 이미 사라진 것처럼 둥그런 모양의 캔버스들도 자연스럽게 뒤섞여 있다. 이렇게 완성한 작품으로 그는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가. 대부분의 작품들에는 해시계의 눈금을 의미하는 선들이 원모양으로 그려져 있고, 그 중앙에는 돌이나, 철모 속의 백록담이나, 녹슨 통을 뚫고 나온 꽃이나, 오랜 축음기에 바늘을 올려놓아 음악이 흐르는 장면을 비롯하여 작품들마다 다양한 이미지들이 그려져 있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해시계의 눈금이 새겨진 선 주위의 바탕색은 사포로 갈아 빛바랜 듯이 보이는 것과는 달리 중앙의 이미지들은 원색으로 그려져 있어 시각적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눈금의 의미를 부연 설명해 주기 위한 <time escape-창밖>, <time escape - springtime 1,2,3>의 작은 박스안의 이미지들은 화면에 실재감을 주는 꼴라주로 흑백사진과 칼라사진을 대비시키고 있다. 즉 흑백사진과 칼라사진의 이미지는 사진 속의 풍경을 관찰하면 영화의 촬영 기법에서 보듯이 동일한 장소의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다시 말해 우리 의식 속에서 칼라 사진은 현재의 모습으로, 흑백 사진은 과거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을 그려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Time escape - 창밖, 160x80cm Mixed Media on Canvas 2005 (박스부분1)


표면의 색과 질감, 그리고 박스 안의 이미지들은 눈금 중앙의 이미지와 눈금 주변의 이미지를 대비시켜 그 의미를 전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눈금 주변의 색과 질감과 이미지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것들을, 그리고 중앙의 색과 질감은 시간의 흐름 속에도 변화하지 않는 것들을 대치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 시간은 시계의 초침이 왼쪽에서 오른 쪽으로 흐르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나아가는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time escape-창밖>의 박스 안의 이미지에서 보듯이 현재에서 과거로 나아가는, 마르셀 푸르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과 같이 작가의 주관적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Time escape - 창밖, 160x80cm Mixed Media on Canvas 2005 (박스부분2)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소설 속의 주인공이 어린시절에 보냈던 과수원을 걸으면서 끊임없이 촉발되었듯이 작가 정창균도 <time escape-lunch>에서 보듯이 어린시절의 난로 위에 도시락을 데우는 장면을 떠올리며 그 의식을 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 의식은 <time escape-memory1,2,3,4>, <time escape1,2,3,4,5>의 작품에서 보듯이 작가에게 자기 자신만이 간직한 과거의 시간 속에 머무는 나르시스적인 현상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time escape-파랑새1,2>, <time escape-DMZ-Soul2>의 중앙의 이미지에서 보듯이 그것은 생명을 잉태시키는 음양의 화합 속에서 생겨나는 의식들이며, 녹슨 철판을 헤집고 솟아나는 꽃처럼 인위적인 것들과 대비되는 자연적인 것들로 연장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생각은 <time escape-stone1,2,3,4,5,6,7>의 자연석들을 상징화한 돌의 이미지들에서 다시 볼 수 있으며, 밑줄이 그어진 단어들로 자연에서 인위적인 것으로 넘어오는 과정을 화장지로 표현한 <time escape-사랑나무1,2>의 작품을 통해서 작가의 의식을 다시 확인해 볼 수 있다. 그러한 의식 현상의 탐구를 통해 작가가 찾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1999년의 첫 개인전의 작품들에서 보여준 성찰의 문제를 파헤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관심은 공허와 소외, 불안감에 기조한 인간의 피폐화되어가는 존재의 상실에 대한 논의로 집중되어진다.”라고 첫 개인전의 서문에서 미술평론가인 최병식이 평한 글처럼 물질문명의 포로가 된 인간의 숨 막히는 질식의 근원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물질문명으로 인한 그 의식의 충격을 작가는 2004년의 글에서 다시 이야기하고 있다. “고향에 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겨났다. 몇 달 전에 보았던 비포장길이 사라진 것이었다. 그 자리에는 자동차만이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짧은 시간에 이렇게 커다란 변화가 생겨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막상 체험을 하고 나니 실감이 난다.”


물질문명은 그 이기와 함께 그 변화의 속도를 알아채지 못하고 욕망이 살아 숨쉬는 의식 속에는 그것을 마주하는 순간 <회색지대9903, 1999>에서 보듯이 그 회색의 벽 앞에서 알몸으로 몸부림치며 절규하는 한 남자의 모습과 같은 이미지를 떠오르게 할지도 모르며, 그 꿈을 이루고자 하는 이에게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자신의 목적을 향해서 치닫게 하는 것이다. 


첫 개인전 이후 작가는 물질문명으로 인한 인간 의식 현상의 흐름을 시간의 풍경과 함께 반추해보기 시작한다. <time escape,2002>의 풍경은 화려한 궁전의 이미지에서 보듯이 어린시절에 한번쯤 꿈꾸던 미래의 시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궁전의 모습과는 달리 회의적인 회색의 바탕화면을 통한 화면 구성에서 보듯이 그 욕망을 통해 도달한 미래의 시간이 그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time escape-perfume, 2004>에서 그는 시계를 의미하는 도상에 이미지들을 대조시키며 그것과 대립된 의식과 마주한다. 엉덩이를 그려놓은 시계추의 이미지에서 보듯이 과거의 의식과 연결되지 못한 욕망이란 물질문명과 함께 변화하는 것들로 지속적이지 못하며, 시계추처럼 흔들리는 것으로 불안감만을 더해주는 것이다. 불안한 미래의 시간도 그 중심에서 찾을 때 그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다는 것을 시계 도상의 중심에 사방으로 꽃잎을 흩날리는 꽃을 그려놓음으로써 상징화하고 있다.


시간의 중심에 자리한 것은 무엇인가. <time escape-lamp, 2004>에서 보듯이 그에게는 어린시절에나 볼 수 있었던 램프에서 보여주고 있듯이 과거의 시간들이 의식의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의식은 그에게는 어린시절의 시간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번 작품의 이미지들이나 원형의 캔버스 틀에서 보듯이 인간의 규범적 굴레에서 벗어나 문명의 이기 속에서도 초연한 자연의 생명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Time escape - lamp 80x60cm Oil On Canvas 2003


시간으로 떠나는 그의 풍경들은 어디로 이어지는 것일까. 아직은 그의 시간 풍경 속에서 아직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인간이 처음으로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생각을 갖게 되고 또 그가 보았던 것을 너머서는 것을 갈망하게 되었던 것은 아마도 죽음을 본 데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죽음은 최초의 수수께끼였고, 죽음은 인간을 또 다른 길로 접어들게 한다.”고 한 레지스 드브레의 <이미지의 삶과 죽음>에서 한 이야기들의 이미지들과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시간의 이미지들과 함께 떠나는 그의 이번 전시는 급변하는 물질문명의 변화 속에서 우리의 의식이 서 있어야 할 자리를 사색하게 한다. 


Time escape, 163x133cm Mixed Media On Canvas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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