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지수 | 심상(心相)을 비추는 거울 (변종필 / 미술평론가, 장욱진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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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균(1968~)의 ‘명경지수(明鏡止水)’시리즈는 화면 가득 펼쳐진 책, 그 위에 올려진 꽃과 과일, 그리고 그 정물들을 비추는 바닥의 거울이 수평과 대칭의 엄격한 구도 아래 극사실적으로 묘사된 그림으로 특별하다. 그의 작품에서 받은 인상은 어느 나른한 오후의 휴식 같은 한가로움과 이른 아침의 차가운 기운이 머물러있는 한켠의 공간처럼 하나의 그림 속에 따뜻함과 차가움이 공존하는 느낌이다.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을 지닌 것처럼 이성과 감성이 대칭선을 사이에 두고 교차한다. 책 위에 놓인 싱그러운 과일과 생명의 표정을 지닌 꽃이 고단한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줄 만큼 자극적이라면, 바닥의 거울은 차가운 감촉과 무한의 공간감이 정신을 흔든다. 이러한 상반된 분위기는 그가 작품에 담고자 하는 주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그의 정물화가 단순히 대상의 사실적 재현이나 시각적 즐거움을 찾는데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실제 그의 작품세계는 극사실적 묘사의 정물과 바닥거울에 반사된 정물을 통한 실재와 환영, 이성과 광기, 정신과 물질, 성(聖)과 속(俗) 등과 같이 상반되지만, 그 경계가 모호한 것들의 관계에 관한 동양 철학적 시각의 접근이다. 단적으로 표현하면 형식은 서양적이지만 내용은 동양적 사고에 뿌리를 두고 있는 셈이다. 이는 서양의 나르시시즘과는 본질에서 다른 명경지수라는 화제(畵題)로부터 기인한다. 


명경지수는《莊子》의 ‘덕충부편(德充符)’에 실린 고사성어로 “사람은 흐르는 물에 비추지 못하고, 고요한 물에만 비출 수 있다. 오직 고요한 것만이 능히 다른 것을 고요하게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스스로 고요한 마음을 가진 자만이 능히 다른 사람의 흔들리는 마음을 고요하게 할 수 있다”며 누군가의 마음이 그쳐 있는 물처럼 조용하다면 사람들은 그를 거울삼아 모여들 것(정용선 지음『장자, 마음을 열어주는 위대한 우화』간장. 2011. 248-257참조.) 이라고 제자를 일깨워 주었던 공자의 가르침에서 나온 말이다.


정창균의 작품세계는 공자의 혜안(慧眼)을 시각적으로 옮기는 것에서 출발한다. 화면 구성상 거울을 정물의 옆이나 뒤가 아닌 바닥에 놓은 것도 명경지수를 독법(讀法)하여 거울을 물과 동일시한 의도이다. 따라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책 위에 놓인 정물보다는 그 정물을 비추는 거울에 부여한 작가 정신이다. 사실 거울 속에는 어떤 실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어떤 대상이 놓이면 비추고 또 사라지면 거울로만 남을 뿐이다. 거울은 인위적으로 왜곡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모습을 고스란히 인정하고 비춘다. 이 점에서 작품 속 거울은 허정(虛靜)한 마음과 같다. 고요한 물이나 거울처럼 텅 빈 마음으로 자신을 들여다보고 그 속에 비친 존재적 실상을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이다. 


 정창균이 표현하고자 하는 명경지수의 의미는 사진처럼 정묘하게 표현한 극사실적 기법과도 연계된다. 그의 그림 속 과일, 꽃, 나비, 책 등은 하나같이 외형적으로 완전한 형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외형적으로 완전함을 추구한다는 것은 단지 형(形)에 집착하는 것으로 오히려 사물의 존재적 실상과는 무관할 수 있다. 형은 어차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멸하거나 유전하는 존재의 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외형의 모습을 따르는 것은 허상을 쫓는 것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그림이 실재인지 그림인지 구분되지 않을 만큼 극단적 환영주의, 즉 눈속임〔trompe l’oeil〕에 빠지는 것은 실체를 감추는 껍질일 뿐이다.


여기에 관해서 작가는 화면가득 실재보다 몇 배의 크기로 확대한 이미지를 통해 회화에서 재현이 허상임을 밝히고 있다. 동시에 정밀하게 표현된 정물보다 거울에 반사되어 희미하게 그 형체를 반추하고 있는 미완결의 형체가 사물의 본질이고 존재적 실상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사실 거울에 반영된 이미지는 시점상 불가능하다. 마치 존재적 실상이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처럼 완벽한 형을 갖추지 않았다. 결국, 그에게 거울은 사람의 정신과 마음에 감응된 이미지만을 반영하는 것이다. 극사실로 묘사한 화면 상단의 이미지가 물질의 세계라면 무한의 공(空)을 지닌 거울은 정신적 내면을 상징한다. 


정창균이 지금까지 발표한 명경지수시리즈는 외형적으로는 얼핏 특별한 변화가 없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외형적 변화보다 늘 정신적 측면에서 변화를 거듭해왔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어떤 특정 대상을 소재로 사물의 본질에 천착하는 경우와 같이 그는 명경지수라는 주제를 통해 회화와 사물의 본질에 접근했기 때문이다. 아직 명증한 자기 확립을 이루지 못한 부분이 있지만, 적어도 자기표절(self-plagiarism)에서 오는 매너리즘을 항상 경계하며 일관성을 유지해온 그의 활동에서 커다란 시각적 변화보다는 정신적 성숙에 무게를 두고자한 작가의지를 엿볼 수 있다. 이는 최근 작품의 소재와 색조에서 나타난 작은 변화와도 관계한다.


최근작은 색채가 지극히 부드럽고 차분한 톤이 주조를 이룬다. 2007년~2011년의 작품들이 강렬한 색과 뚜렷한 외형에 집중한 측면이 강했다면, 이후 작품들은 전체적으로 차분한 파스텔 색조가 화면을 주도한다. 절제된 색과 여백으로 욕심을 비웠다.  그래서 지난 세월과 함께 색감이 무르익은 것처럼 숙성된 편안함이 시각적 피로를 덜어준다. 색이 인간의 정서와 감성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느끼게 하는 변화이다. 


색조보다 더 큰 변화를 보인 것은 책이 중심적 소재로 확대된 점이다. 재질, 두께, 형태, 모양 등 외적 특징으로 조형성을 살리고, 예술관련 서적부터 성경, 위인전집 등의 내적 특성을 부각시켜 책의 정신성을 강조했다. 책은 단순히 지식을 얻고, 앎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아니다. 모든 책이 진실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자신의 삶과 무관하다고 생각한 내용을 책을 통해서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상상의 세계를 만나기도 한다. 사물이 바라보는 관점에서 따라 다르듯 책도 읽은 사람의 마음과 정서에 따라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이 점에서 정창균은 책이 지닌 무한한 세계를 지식의 탐구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자신의 꿈과 희망을 키울 수 있는 대상, 혹은 자신의 존재적 실상을 성찰할 수 대상으로 선택한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싱그러움을 잃어갈 수밖에 없는 자연물과 묵묵히 인간의 심성을 숙성시키는 책을 통해 삶의 진리를 깨닫고자 한다.”라는 작가노트의 글귀처럼 책은 자신의 내부, 즉 정신적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심상(心相)의 거울이다. 화려한 꽃이나 싱그러운 과일은 언젠가 시들고 상할 수밖에 없지만, 책은 마음과 정신 속에 영원히 남는다.


곰브리치는『예술과 환영』에서 ‘미술의 언어가 이룩한 진정한 묘미는, 미술가가 실재의 환영을 창조하는 것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거장의 손을 거치면 이미지가 투명해진다는 사실이다. 가시세계를 새롭게 보도록 가르치는 과정에서, 거장은 보이지 않는 마음의 영역 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환영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E.H.곰브리치, 차미례옮김『예술과 환영』열화당. 2003. 359.)


고 했다. 회화와 인간의 심리학적 관계에서 미술의 진정한 힘을 발견한 곰브리치의 명쾌한 통찰은 정창균이 작품에 담고자 하는 미적 가치와 연결 지을 만하다. 궁극적으로 정창균의 명경지수는 마음의 덕(德)을 키우는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맑은 숙기(淑氣)와 무심(無心)을 얻을 수 있다면, 누구나 자신의 존재적 실상을 회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예술을 통해 진정한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고자 하는 작가정신이 창작의 깊이만큼 투명해지는 것은 작가나 감상자에게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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