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지수 | 맑고 고요한 마음을 그리니, 寂然不動의 정물에서 感而遂通하다.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다가, 느껴서 마침내 통하다’ (서영희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조회수 168

   정창균의 <명경지수>는 극사실의 정물화로 조형적 형식의 문제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마음 상태를 비추는 그림으로 자리매김한다. 마음으로 보고 거기에 비춰진 상을 지각함으로서 마음의 상태를 깨닫는 그런 그림이다. 그렇다고 해서 <명경지수>가 철학적이거나 관념적인 내용으로 기울어진 개념미술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와는 반대로 그의 작품은 무엇보다 감각의 움직임을 중시한 경우이며, 감각을 통해 직관에 이르게 하는 즉 ‘느껴서 통하게’ 하는 지각의 형상회화이다. 앞에서 이미 말했듯이, <명경지수>는 이 지각을 위해 극명한 모방의 표현기법을 활용하여 사념이 없는 깨끗하고 허령한 마음을 은유한다. 그러니 <명경지수>의 명료한 극사실 화면은 맑은 거울과 고요한 물에 다름 아니다. 주관적 감정의 찌꺼기가 먼지처럼 부유하지 않는 명징한 거울인 셈이다. 그래서「장자」의 ‘덕충부’편에서, “사람들은 흐르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멈추어 있는 물을 거울로 삼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명경지수> 연작이 사물에 대한 허정하고 명료한 지각으로 ‘마음’ 즉 존재의 근원에 대한 직관의 혜안을 여는 작품들이라고 생각한다. 주희는 이 마음의 동정(動靜)에 대해서 두 가지 단계로 구분해서 말한 적이 있는데, 본고에서는 이제 그 두 단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朱子語類」, 권65, ‘易1’편을 보면, 「역전」에서 발췌한 다음과 같은 구절이 인용돼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다가 느껴서 마침내 통하다”(寂然不動 感而遂通). 여기서 주희는 먼저 우주론적인 맥락으로 부동(不動=陰)과 동(動=陽)을 설명하다가 논의를 계속 전개하면서 마침내는 ‘마음’에 관련시켜 해석을 한다. 곧 아무 형체 없이 실재하던 마음(陰)이 외부 사물이 다가오자 그에 반응하여 움직이고 감응하는 마음(陽)이 된다는 설명이다. 그러므로 마음의 첫 번째 단계가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음’이고, 두 번째 단계는 ‘느껴서 마침내 통함’이 되겠다. 특히 후자에 대해, 「朱子語類」, 권72, ‘易8편’에서 “感은 사물이 와서 나를 느끼게 하는 것이며, 通은 자기가 그 느낀 것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라고 부언하여, 마음작용이 곧 지각(知覺)작용임을 확인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주희는-혹은 그와 견해를 공유한 주변 신유학자들도-  ‘마음’을 음양의 기로 간주하며, 음양의 감응으로 지각의 작용을 한다고 이해했던 거라고 볼 수 있다. 이 견해는 필자가 생각하기에, 마음에는 어떠한 선험적인 관념이나 원리도 없으며, 외부 사물과 기를 통해 감각, 감응함으로서만 그것에 관한 지각의 앎을 얻을 수 있다는 경험적 입장이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문제는 주희가 객관적 감각경험의 지각과 직관인식만을 인정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경험론적 신유학자인 장재로부터 ‘심통성정’(心統性情)론을 수용하긴 했어도, 주희는 만물(유형, 무형)의 본성을 理로(性卽理)로 보는 사유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물과 만나서 감응하기 이전의 고요한 마음을 마음의 근원이자 본성인 理로 간주하지 않았을까 라는 추론을 해보게 된다. 그가 마음에 내재한 性(본성)인 理가 마음의 동정과 상관없이 이미 구비되어 있고, 理가 마음의 감응(氣)에 있어 내적 계기임을 주장하던 겸리기의 학자인 바에야, 그 같은 고려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된다. 더군다나 그가 氣보다는 理를 철학의 중심으로 삼았던 선행 학자인 정이로부터 ‘理가 우주 만물의 감응 작용의 근원’이란 선험적 인식론의 영향도 받았기 때문에, ‘적연부동과 감이수통’의 의미해석에서 지각론만을 계속 유지하며 ‘마음’을 궁구할 수는 없겠다. 그러므로 주희가 마음의 존재론에서는 일원론을 표방하면서도 마음의 인식론에서는 이원론의 입장을 취한다고 보아, 다음과 같이 마음 작용을 이해하는 편이 옳겠다. 마음의 동정에 대한 두 단계인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음’과 ‘느껴서 마침내 통함’에서, 전자의 단계는 마음의 움직임이 없는 가능태로서 理의 차원으로 그리고 후자의 단계는 마음이 드러나 작용하는 현실태로서 氣의 차원으로 인식하도록 한다. 그렇다고 보면 이와 연관하여 H. 베르그송이 「창조적 진화」에서 설명한 생기론(生氣論)이 역시 머리에 떠오른다. 마음도 생명의 기운처럼 발생한다고 본다면, 마음이 어떤 형체를 갖기 전의 정적이고 고요한 상태는 마음의 잠재태로 그리고 마음이 발생하여 四端七情의 다양한 모습으로 발행하면 그래서 <명경지수> 연작의 형상으로 드러나면, 이는 마음의 현실태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다가 느껴서 마침내 통하다”라는 마음의 작용은 곧 잠재태에서 지각 가능한 현실태로 이행하는 마음의 사태 바로 그것이겠다.


   ‘적연부동과 감이수통’(寂然不動 感而遂通)은 맑고 고요한 <명경지수> 연작에서 가장 잘 감득할 수 있는 마음작용을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 마음작용의 원인이랄까 혹은 <명경지수> 연작이 그려져야 하고 또 관객이 감상해야 하는 어떤 까닭으로서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필자는 이에 대한 답이 앞에서도 말한 주희를 비롯한 신유학자들이 궁구한 理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양에서 말하는 이데아의 실재도 아니고 기독교적 진리도 아니며, 사회적 이념도, 개인의 욕망도 아닌 理는, 어쩌면 고대 서양에서 언급하던 그 코라(chora, khôra), 우주 만물의 생성 이전에 있던 모태와도 같은 근원이자 모든 생명에 분유된 본연의 법칙적 에너지이기도 한 그 코라가 아닐까 한다. 동양의 음양론의 개념을 빌어 표현하자면, 음과 양으로 구분되기 이전의 태극의 범주로 비유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코라와 태극 그리고 理는 무형이고 잠재태이며 부동성과 운동성을 모두 내재한 하나의 근원이고, 어떤 명목으로도 완벽하게 정의될 수 없는 그 무엇이므로, 세 가지는 모두 동연적(coextensif)인 개념들로서 상호 비교될 수 있겠다. 이로서 본고에서는 정창균의 <명경지수> 연작에서 우리가 느끼는 저 맑고 고요함, 허령함의 감각이 지향하는 차원을 존재의 근원이자 본연의 원리인 理의 차원이라고 정리해두고자 한다. <명경지수>에서 직관하게 되는 것은 그러므로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변함이 없는 마음의 理, 마음의 본래 면목이다.  


   理는 인간과 만물에 분유되어 있고 모든 존재는 理를 본성으로 함축하고 있다(理一分殊). 그래서 우리는 외부 사물을 지각할 때 그 사물과 동일한 리(엄밀히 말해 分殊理)를 마음 내부에서 직관할 수가 있다. <명경지수>에서도 경험적 감각지각을 하면서, 감상자는 궁극의 理를 직관하여 마음의 본 면목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이 느끼고 통하는 것은 氣에 해당하는 지각 작용이되, 마음의 발행으로 감응하면 그 대상의 본연의 이치를 감득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다가 느껴서 마침내 통하다’(寂然不動 感而遂通)에서 ‘고요하여 움직임이 없음’은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아닌 無가 아닌 것이다. 보이지 않는 만물의 理가 그 안에 이미 빽빽하게 구비되어 있음이며, 그리하여 외감(외부의 감각)이 작용할 때, 리의 내적 계기는 활연관통하여 마음의 지각작용을 이루는 것이 된다. <명경지수> 연작은 이 같이 내부의 理가 ‘고요하게 움직이지 않다가’, ‘느껴서 마침내 통하’는 마음의 상태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라고 생각된다, 또한 필자는 이 점이 정창균 작가의 극사실의 정물화를 그 외의 다른 극사실 화가들의 작품과 차별화시키는 중요한 변별점이라고 여기고 있다. 


   정창균의 <명경지수> 연작은 정물화이고, 불어로 말하자면 ‘nature morte’ 즉 죽은 듯 움직이지 않는 자연을 보여준다. 그러나 극명한 극사실의 표현기법 덕분에 부동의 이미지는 생생한 리얼리티의 감각으로 되살아난다. 정적이고 고요한 정물 이미지가 티 없이 맑고 고요한 생각, 의지,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관객의 몸속에서 활연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다가 느껴서 마침내 통하’는 마음의 발동이다. 관객은 <명경지수> 앞에서 이렇게 느끼고 반응하며, 자연스럽게 각자 나름의 감동이나 기억 혹은 내면 성찰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매혹적인 감각적 지각과 고요한 마음의 성찰이 <명경지수> 연작 앞에서 유독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은 왜일까? 따지고 보면 사실 극사실 회화의 감각적 효과는 상당히 저돌적이어서 관객의 시선을 압박하듯이 다가오는 것이 상례이다. 그 앞에서 여유롭고 차분한 사색의 깊이로 빠져드는 일은 그다지 많지가 않다. 그 만큼 극사실 회화는 관객의 감각의 움직임을 빠르게 하고 의식과 지각작용을 피동적이 되게 만든다. 예컨대 고영훈의 <이것은 돌입니다>(1974) 작품은 캔버스의 규모에 상관없이 관객에게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시선 앞으로 던져진 듯한 돌에 대해 관객은 여유로운 마음의 작용을 누릴 수 없다. 돌의 즉물적인 등장과 표제의 직설적인 문구가 그 동안 구상회화가 주던 주관적 감정에의 몰입, 추상화의 현실을 떠난 관념성 뿐 아니라 지각의 능동적 작용마저도 접어 버리게 한다. 이후에도 대부분의 한국 극사실주의 1세대 화가들은 극사실의 정밀묘사를 하면서 소재에 매우 가깝게 접근한 나머지 즉물적인 화면을 만들어내곤 했다. 대상이 된 사물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배경을 없앴는데, 이런 배경의 희생은 물상만으로 가득 채운 화면을 낳아 결국 회화를 즉물적인 상태로 몰아넣었다. 이를테면 대상에 대한 투시 거리가 짧아서 확대된 대상을 미시적으로 정밀하게 그리게 되고, 그러다보니 사물성의 감각이 절로 강해진 것이다. 이렇게 배경이 사라지고 물상만이 확대된 극사실회화는 외물에의 감각 의존도를 높여서, 내감보다는 외감이 더 중요한 감각체험의 외재화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극사실주의 1세대 화가들에 비해 이십 년 후 극사실 회화에 합류한 정창균은 선행 작가들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그들이 지나간 궤도를 그대로 따라 밟고 있지는 않다. 불긍거후(不肯車後) 즉 남의 뒤를 추종하지 않겠다는 도전의식이 작용해서일까. 그는 대상을 묘사할 때 프로젝터, 에어브러시 같은 기계에 의존하기보다 대체로 손과 붓으로 세밀한 묘사를 하며, 실재 장면의 감각을 위해 시 초점이 맞추어진 부분과 바깥 부분들에 대한 명확도에서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미세한 차이를 두기도 한다. 그래서 그가 완성해낸 화면은 선행 극사실회화나 제3세대 극사실회화가 주는 차갑거나 냉랭한 기계적 느낌이 아니라 인간의 눈과 손길의 느낌이 어른거리는 이미지로 부각된다. 특히 그는 화면 중앙에 놓인 정물의 소재 뿐 아니라 그 주변 배경 공간도 함께 그림으로서, 선행 극사실주의 화가들과 결정적으로 거리를 둔다. 크게 보면 역시 근접 이미지이긴 하지만 초근시안적인 접근이 아니라 대상에서 약간 물러난 거리에서 바라본 장면이기 때문에, 대상 안으로 함몰된 시야는 아닌 것이다. 이렇게 사물과 배경 공간이 함께 그려져서 동시에 지각되면, 감상자는 어떻게 반응하게 되는 것인가. 관객은 화면 안에서 사물만을 주시하지 않고, 사물과 배경 공간, 두 요소를 일시에 지각하게 되고 두 요소의 관계를 의식할 수밖에 없게 된다. 화면에서 3차원 공간의 깊이로 둘러싸인 사물은 우리가 일상에서 사물을 보는 방식 그대로 보여진다. 우리는 현실에서 기본적으로 우리 자신의 몸을 포함한 외부세계를 바라보는데, 우리의 몸과 세계는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하나의 거대한 공간(몸 밖의 또 하나의 거대한 몸), 유기적으로 하나가 되는 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간 안에 있는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객관의 대상을 내려다보는 오만한 시선이 아니라 보는 ‘나’와 나를 둘러싼 공간을 하나의 유기적인 세계로 바라보는 시선이 된다. 


   <명경지수>에서 사물과 주변 공간을 함께 포착한 장면은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현상학적 시각을 그대로 모방한 장면이다. 더더군다나 극사실의 표현기법이어서, 관객으로 하여금 추호의 의심도 없이 일상의 시각과 동일한 시각장을 느끼도록 한다. 그리하여 <명경지수>를 보는 관객은 그림 속의 정물과 그 주변 공간을 자기 몸의 지향적 시선과 통일된 전체로 의식하게 되며, 이로서 정물 이미지에 대한 지각은 일상의 지각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명경지수>에 대한 이 지각은 몸의 의식 즉 마음의 작용을 발동시킨다. 몸 외부에서 감각할 뿐 아니라 몸 내부에서도 반응하고 수용하며 직관하는 상태를 불러일으킨다. ‘이것은 ~이다’라고 즉물적으로 가리키거나 문학적 서술의 재현을 하는 경우, 이 같은 몸 내부의 의식지향은 단축되거나 피동적이 될 수밖에 없다. 정신분석학에서 보자면 의식의 억압이라고도 할 것이다. 하지만 <명경지수>에서는 마음이 외부에서 감각하고 내부에서 느끼고 반응하는 외감과 내감의 이중적 차원의 활동이 아무 걸림 없이 기능하게 한다. 외부세계에 있는 대상을 보고서 감각하며, 몸 안에서도 그것의 맑고 고요함에 반응하는 느낌의 체험을 하게 하는 것이다. 굳이 말로 설명하자면 이 느낌의 체험은 세상 속에서 이루어지고 동시에 몸속에서도 이루어지는 체험이다. 외부의 대상을 느끼고 알아보는 감각은 외재적 체험이고, 마음이 내부에서 느끼는 감각은 수용하고 포착, 확인하는 내재적 체험이다. 관객의 시선을 대상에 함몰시키는 극사실회화는 내재적 체험보다 외재적 체험의 확장을 요청하는 편이지만, <명경지수> 연작의 경우에는 외재적 체험보다 내재적 체험을 더 요청하는 편이라 하겠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도 F. 베이컨의 강렬한 내재적 체험의 회화와 비교한다면, <명경지수> 연작은 외재적 체험과 내재적 체험이 경험의 층위에서 서로 상충하지 않고 양립하며, 감각의 자율성에 타격을 주지 않는 균형을 이루는 사례라고 말할 수 있다.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다가 느껴서 마침내 통하’(寂然不動 感而遂通)는 마음작용을 표상하는 회화로서 <명경지수>는 또한 우리에게 한국적 감성의 발현을 경험하게도 한다. <명경지수> 연작에서 관객들은 서양 유화를 감상하던 경험과 달리 한국 문인화를 감상할 때처럼 대상을 관조하는 고요한 마음의 지각상태를 체험한다. 그림의 소재 차원에서 비교하자면, 책, 꽃, 향로 등 서재의 일상용품들을 배치한 전통 문방도(文房圖)를 떠올릴 수도 있지만, 이런 민화식 정물화는 평면적 도해와 길상구복의 상징 등으로 인해 그 느낌이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오히려 <명경지수>의 한국적 감수성을 밝히자면, 비록 형상면에서 거리가 있어도, 사군자 정물화를 언급해야 하겠다. 빙설을 뚫고 꽃망울을 터트린 매화 그림 앞에서 우리는 그림의 내용보다는 매화에서 지각할 수 있는 정신적 분위기에 더 마음이 동한다. 이 꽃나무가 누구의 나무이며, 꽃이 왜 더 일찍 혹은 더 늦게 피었냐고 묻지 않고, 이 나뭇가지가 왜 이쪽 혹은 저쪽으로 꺾여 있느냐고 따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런 정보-이야기가 되는 내용-는 순선한 감각과 지각을 흐트러트린다. 맑고 고요한 매화 이미지는 보는 이의 마음에 빙설을 뚫은 기개라든지 지조, 청아한 아름다움 혹은 새 생명의 신비를 비추어주고, 관객의 심중에서 자신이 지각한 바를 직관하게 한다. 


   같은 연장선상에서 정창균의 작화태도도 묵묵하게 속으로 완성된 마음을 담아내는 문인화가의 태도를 닮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일상적인 소재와 극사실의 형식을 선택한 작가이긴 하지만, 자신의 감정과 사념에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의지적 이성으로 제작과정 내내 예리한 감각과 직관의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조선시대 사대부 화가가 획(劃)의 태세(太細), 장단, 필압의 강약을 조절하는 가운데 정신적 직관으로 문인화를 그려냈던 것처럼, 그 역시 감정의 분출에 온 몸을 내맡기는 일을 경계하며, 의식의 날을 세우고 몰입하여 화면 공간을 조형해내는 태도를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작품이 전통 문인화에서처럼 서권기(書卷氣)나 문자향(文字香)을 피어 올린다는 뜻은 아니다. 평소 이론이나 담론보다 실천적 제작에 몰두해 온 그는 자신의 회화에 관념적 의미를 삽입하거나 논리적 추론을 앞세워 개념화하는 일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가 주력하는 것은 세 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겠는데, 첫째 극사실의 능수능란한 묘사로 감정의 흔들림 없는 극명한 리얼리티를 제시하는 일, 둘째 그러면서도 실제 대상에 함몰되지 않은 채 실제를 총체적으로 감지하고 파악하는 일, 셋째 지각의 주체인 자기 자신을 마음(心)의 주체로 바꾸어 마음의 상태를 그리는 일이다. 그 중에도 그에게 중요한 궁극의 과제는 역시 리얼리티의 회복이 아니라 앞에서 말했던 ‘반응하고 감응하며 動하는 마음’,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다가 느껴서 마침내 통하’는 마음을 그 맑고 고요한 본 면목대로 표현해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2000년대 이후 제3세대 극사실 화가들이나 네오-팝 작가들이 보여준 현대 산업사회의 도시문화, 상업문화의 이미지 표현과는 큰 거리를 두고 있는 것임이 물론이다. 그렇다고 해도 동시대의 디지털 이미지와 미디어 이미지의 감성과는 다른 정창균 작가의 감성이 문제시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이 차별점은 결국 그만의 회화적 아이덴티티를 구축했음을 증명해주고, 더 나가서는 감각론과 동양 지각론에 근거한 한국 극사실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며 국제화되는 방향성을 확보한 지점이라고 보아야 하겠다. 

0 0